인공지능 예술을 침범한다. 예술가가 된 인공지능
예술 창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감성'이라는 부분이다. 각기 다른 인간의 다양한 감성이 투영되는 것이 바로 예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는 '차별화'와 연결된다. 차별화는'A와 B는 다르다'는 구별에 대한 의미를 넘어, 본질적으로 예술 작품의 한 요소가 된다. 엇비슷해 보이는 작품이 계속 생산된다면 이를 두고 '독창적이다''창의적이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성을 따라 올수 있느냐 하는 부분, 그리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각기 다른 창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성을 따라올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 경우 궁극적 한계가 있어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대다수이다.
딥러닝은 주어인 입력, 출력데이터의 관계를 학습하는 알고리즘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량화된 많은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창작 과정은 정량화가 어려운 요소들이 많다.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는 미적인 기준이나 또는 감정적인 기준으로 스스로 작품을 평가한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이 같은 미적인 평가, 감정, 영감과 같은 창작 과정에 수반되는 요소들을 과연 정량화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모방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두 번째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창작품이 서로 차별화 요소를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소 긍정적인 입장이 있다. 인공지능의 창작물에서 우리는 충분히 차별된 개성을 누릴 수 있다. 인공지능은 단일한 하나의 객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무'라는 발음을 하면서 나무의 개념을 떠올리고, 의사소통을 한다. 사실 나무는 하나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천 종이 넘는 개별적 존재다. 우리 아파트 뒷동산에도 나무가 있고, 캐나다 밴쿠버 호숫가에도 나무가 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은 그저 알고리즘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일 뿐, 유일한 객체를 표현하는 말은 아니다.
구글에서 만드는 것도 있고, 테슬라에서 만드는 것도 있다.뛰어난 인공지능 전문가라면 혼자서 특정한 알고리즘의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알고리즘이 다르니 딥러닝의 방식도 달라지고, 그 결과 콘텐츠의 결과물도 달라진다. 알고리즘의 숫자만큼 다른 창작물이 생성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인공지능의 콘텐츠에서 개별적인 차별화, 전혀 다른 스타일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성을 완전히 대체하면서 글을 쓸 수는 없지만. 한 단계 낮은, 혹은 보조적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소설 창작을 할 수 있으며, 나름대로의 차별성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인간의 소설'은 어떤 변화를 가질까?
기술의 발달 속도에 맞춰 사람이 쓰는것에 가까운 소설을 인공지능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산의 소설을 맞을 수 있는 운명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종국적으로 소멸하든가. 아니면 이제까지의 모습에서 급진적으로 변화라는 것, 형이상학을 추구하며 '무엇을 상상하든 그이 상의 것'이 될 가능성이다.
이러한 흐름은 생산현장에서 기계가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일을 비교 분석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사를 조인다든지. 물건을 올리는 단순한 작업은 기계가 인간 이상으로 정확하게 해낼 수 있다. 이때부터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나사를 더 빠르고 잘 조이기 위한 근육운동이 아니라. 기계를 감독하고 최적화된 고급 수제품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계 시대의 생존법'인 셈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유려하게 소설을 써 낼수 있다면, 인간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일은 기계 따위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더 높은 고차원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형이상학에 근거한 소설이나 사상을 펼친다든지. 혹은 딥러닝조차 따라올 수 없는 극단의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유형의 소설 작법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독자들은 인간 작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을 확인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 새로운 유형의 독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의 영역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공존'할 것이며, 인간의 창작은 더욱 큰 발전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대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추동하며, 변화를 이끄는 동인이 될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이 콘텐츠를 창작해 낼수 있다는 점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의 창작물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A라는 작품과 인공지능이 만든 AA라는 작품이 거의 동일한 경지라 해도 인공지능은 수많은 패턴의 조합과 발견으로 콘텐츠를 만들 뿐, 인간이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끼는 희열과 떨림, 감동과 좌절의 과정은 없다.
무엇보다 지금 인공지능은 '자발성'이라는 것이 없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다. 인간이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은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콘텐츠의 미래'라는 관점에 일존의 '선긋기'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콘텐츠 분야에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지만, 결국 인간이 하는 총체적 콘텐츠 생상의 결과물을 따라올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이 경계를 중심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아주 좋은 친구나 조력자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 창작자에게 새로운 패턴과 유행을 제시해 줄 수 있고, 그것을 참조한 인간 창작자는 더 나은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인간 역시 인공지능에게 새로운 데이터를 입력하고 딥러닝 알고리즘을 계속 발전시켜야 그 결과물이 더욱 가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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